『미국 해군 100년사』 읽고(공격적 해양통제, 조약과 기술혁신, 합동작전)


내가 해군본부에 근무할 때 읽은 『미국 해군 100년사』 책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미국 해군 100년사』는 19세기 말부터 1990년대까지 미국 해군의 전략과 조직, 기술 및 임무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미국 해군이 전통적인 함대결전 중심의 해양력에서 벗어나, 육군·공군과 함께 수행하는 합동작전과 해상으로부터의 군사력 투사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1. 마한주의와 공격적 해양통제의 등장

19세기 말 미국은 증기기관, 철갑함, 중·대구경 함포 등 해군기술의 발전과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해군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야 했다. 이때 알프레드 마한은 해군의 핵심 임무가 상선 보호나 연안방어가 아니라, 강력한 함대를 건설하여 적 함대를 격파하고 해양통제권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군력을 국가의 경제력·정치력·지리적 조건과 연결하고, 전투력을 한곳에 집중하는 ‘집중의 원리’를 강조했다.

마한의 사상은 미국 해군의 전함 중심 전략과 대양함대 건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스페인전쟁과 쓰시마 해전은 공격적인 해양통제와 대규모 함대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쿠바·푸에르토리코·필리핀·괌 등을 확보하면서 대양국가로 성장했고, 대서양과 태평양에 함대를 배치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예상과 달리 전함 간 결전보다 독일 잠수함에 대응하는 호송선단과 대잠전이 더욱 중요했다. 미국 전함은 적 전함과 직접 교전하지 못했지만, 구축함과 호위함을 활용한 호송작전으로 연합군의 해상교통을 지켰다. 이는 해양통제가 반드시 적 함대를 격파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필요한 해역을 보호하고 수송로를 유지하는 것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2. 조약과 기술혁신, 제2차 세계대전의 해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영국·일본은 군비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워싱턴 해군조약과 런던 해군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들은 전함의 수와 배수량을 제한했지만, 그 결과 해군 경쟁의 중심은 항공모함·순양함·잠수함으로 이동했다. 미국 해군은 전함 중심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항공모함과 항공기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함대훈련과 워게임을 통해 항공모함이 먼 거리에서 적을 공격하고, 전함보다 기동성과 타격력에서 우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변화가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은 시기였다.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 해군은 전함 중심의 함대 운용에서 항공모함 기동부대 중심으로 전환했다.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은 수상함이 직접 포격을 주고받지 않고도 항공기만으로 해전의 승패를 결정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잠수함을 적극적으로 운용했고, 일본의 항공모함과 상선단을 파괴하여 일본의 작전능력과 보급능력을 약화시켰다. 동시에 상륙함정, 해병대, 수송선단을 대규모로 운용하여 섬을 점령하고 전진기지를 확보했다.

미국은 대서양에서는 독일의 U보트에 맞서 호송선단과 대잠전을 수행했고, 태평양에서는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기동함대와 잠수함을 이용해 일본의 해상교통로를 차단했다. 1944년 이후에는 맥아더의 남서태평양 진격과 니미츠의 중부태평양 진격을 병행하는 이중진격전략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해군의 임무는 적 함대를 격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고, 상륙작전을 지원하며, 육상작전에 필요한 해상·항공 전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3. 냉전과 해양전략, 합동작전으로의 전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 해군은 핵무기와 장거리 폭격기를 보유한 공군에 비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시 설명해야 했다. 해군은 항공모함의 함재기와 대잠전, 해상교통 보호, 해상으로부터의 군사력 투사 등을 새로운 임무로 제시했다. 특히 지중해에 제6함대를 배치하고 세계 각지에 함대를 전개함으로써, 미국의 외교와 억지력을 뒷받침하는 전방 주둔군 역할을 수행했다.

1949년 ‘제독들의 반란’은 항공모함과 해군 항공력의 역할을 둘러싼 육·해·공군 간 갈등을 상징한다. 이후 한국전쟁은 해군과 해병대의 존재 가치를 다시 입증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상륙작전과 해병대가 핵시대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고, 항공모함과 함포, 해상수송능력은 지상군 작전을 지원하는 핵심 수단이 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해군은 폴라리스 미사일을 탑재한 원자력 잠수함을 건설하여 핵 억지력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핵전력에 대한 투자가 다른 함정과 무기체계의 균형을 약화시키는 문제도 나타났다. 베트남전과 1970년대의 예산 부족은 해군의 전략적 혼란을 심화시켰지만,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기의 해양전략은 소련 해군에 대한 공격적 해양통제와 대규모 함대 건설을 강조했다.

냉전이 끝나고 걸프전이 발생하면서 미국 해군은 다시 한 번 임무를 조정했다. 해군의 역할은 더 이상 독자적인 함대결전에 한정되지 않고, 해상교통의 자유 보장, 항공·미사일 공격, 병력과 장비 수송, 상륙작전, 보급 및 합동·연합작전으로 확대되었다. 1992년 해군백서는 이러한 변화를 공식화하며, 해군력이 ‘바다에서의 전쟁’에서 ‘해상으로부터 수행하는 합동작전’으로 전환했음을 선언했다. 결국 미국 해군 100년사는 마한식 함대결전의 전통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시대 변화와 기술혁신에 적응하면서 해상통제와 군사력 투사를 결합한 현대적 해군으로 발전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