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 가입교 특별훈련(갑작스런 훈련, 혹독한 훈련, 피어난 동기애)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은 처음 격었던 기초군사훈련의 기억이 오랬동안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러 당시의 모든 일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전 받았던 가입교 특별훈련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때는 이런 혹독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더욱 당황스럽고 힘들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해군사관생도로서 첫발을 내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소중한 과정이었다.


1.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던 날과 갑작스럽게 시작된 훈련

1월 중순 어느 날 오후,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학교 앞에 도착해 여관을 잡았다. 아침에 집에서 출발해 바로 입소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날 저녁에 학교에 들어가 숙박한 동기들도 있었다. 우스게 소리로 그 동기들은 두고두고 ‘나는 왜 하루 먼저 학교에 들어가서 잤을까’하고 후회를 많이 했다.

다음 날 아침,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에 들어가니 강당에서 가입교식을 한다고 했다. 지정된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가입교식 예행연습이 진행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관학교라고 해서 특별히 힘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입교식이 끝난 뒤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특별훈련 소대장이라며 여덟 명의 교관이 소개되었고, 그들은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 종이 한 장 보지 않고 서른다섯 명 가량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렀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의 이름을 외운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름이 불린 생도들은 같은 소대가 되어 별도의 대열을 이루었고, 여덟 개 소대의 편성이 끝난 뒤 특별대대 건물 앞으로 이동했다.

한참 동안 별일 없이 대기하고 있어 긴장이 조금 풀리려는 순간, 갑자기 문이 열렸다. 여덟 명의 소대장들이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긴 챙의 모자를 쓴 채 빨간 마후라를 두르고, 군화를 힘차게 구르며 뛰어나왔다.

“똑바로 서!”“턱 끌어!”“무릎 붙여!”“시선은 상방 15도!”

소대장들은 큰 목소리로 명령하며 소대원들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그때부터 시키는 대로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지적을 받고, 다시 해야 했으며, 본격적인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2.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한 혹독한 훈련

훈련은 아침 기상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침식사 전에는 아침점호를 실시했는데, 주로 구보를 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학교 뒤에 있는 망해봉까지 등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짧은 거리를 천천히 달렸지만, 날이 갈수록 구보 거리는 길어지고 속도도 빨라졌다. 한 달쯤 지나자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식훈련도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상방 15도로 유지한 채 발끝을 모아 걷는 법을 익혔다. 좌향 앞으로 가, 우향 앞으로 가, 뒤로 돌아가와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대열과 오와 열을 맞추는 훈련도 했다.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지만, 모든 동작을 정확하게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소총을 지급받은 뒤에는 총기의 구조와 사용법을 배우고 집총제식과 총검술을 익혔다. 포복하여 기어가는 훈련과 PT체조, 장애물 통과 등 유격훈련도 받았다. 사격훈련과 행군도 빠지지 않았다. 행군은 처음에는 짧은 거리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거리가 늘어났다. 겨울철이라 비가 거의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야외훈련이 다른 훈련으로 대체되는 일도 많지 않았다.

어느 날 밤에는 깊이 잠들어 있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총원 비상소집”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모두가 놀라 잠에서 깨어 단독군장을 하고 5분 안에 지정된 장소로 집합해야 했다. 군화를 제대로 신을 겨를도 없이 대충 신고 뛰어나갔는데, 그 때문에 발에 물집이 생겨 큰 고생을 했다. 비상소집과 구보는 서너 차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 세 번 정도는 비상소집과 구보를 마친 뒤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 군가를 부르는 훈련도 있었다. 한겨울의 바닷물은 너무 차가워서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옆에 있던 마른 체격의 동기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우리는 이 훈련을 ‘옥포만 의식’이라고 불렀다.

훈련이 시작되고 1~2주가 지나자 동기들이 한 명씩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다쳐서 입원했고, 누군가는 훈련을 견디지 못해 퇴교했다고 했다. 함께 시작한 동기들이 하나둘 줄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주말에는 평일보다 조금 여유가 있었다. 신변을 정리하고, 일요일 오전에는 종교활동에 참여했다. 당시에는 세 종교 가운데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서 참석해야 했다. 종교시설에서는 힘든 훈련을 받고 있는 생도들을 위해 먹을 것을 마련해 주었는데, 그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힘든 훈련 속에서 누릴 수 있었던 작은 위로였다.

3. 동기애 속에서 맞이한 훈련의 끝과 입학식

훈련 마지막 주에는 입학식을 준비하기 위한 의식훈련과 분열훈련이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다. 통영에 있는 제승당을 찾아 이순신 장군의 영정에 참배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한 훈련을 넘어, 해군사관생도로서의 마음가짐과 자긍심을 갖게 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야간에 불시에 실시되는 비상소집은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때로는 팬티만 입은 채 옥포만의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 군가를 부르고 나오기도 했다. 물에서 나온 뒤에는 옆에 있는 동기들과 서로 꼭 껴안았다. 차가운 몸을 서로의 체온으로 녹이며 버텼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고통을 견디는 전우이자 동료라는 사실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루는 학교에서 천자봉까지 긴 행군을 했다. 하루 종일 이어진 행군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전 사관생도들이 길게 줄을 서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들은 박수를 보내며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정말 훈련이 끝나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입학식 날이 되었다. 식장에는 부모님과 친지들이 많이 찾아왔고,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 함정도 동원되어 도열했다. 사관학교장의 주관으로 입학식이 거행되었고, 식이 끝난 뒤 부모님을 만난 동기들 중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그날 ‘정말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입학해 갑작스럽게 혹독한 훈련을 받았지만, 끝까지 견뎌 낸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그 훈련은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기들과 서로 의지하며 진정한 전우애를 쌓는 과정이기도 했다.

누군가 미리 이런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입학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맞닥뜨렸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고, 동시에 더욱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해군사관생도 가입교 특별훈련은 그렇게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첫 번째 도전으로 남아 있다.